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제가 그랬다면 죄송합니다.”
형사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다가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술에 취해 당시 상황이 선명하지 않거나, 상대방이 피해를 입었다고 하니 예의상 사과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입니다. 잘못을 인정하려는 뜻은 아니었지만, 완강하게 부인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수사관이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를 수 있습니다.
조사실에서 한 말은 일상적인 대화로 사라지지 않고 피의자신문조서라는 기록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랬다면 죄송하다”는 애매한 한마디가 이후 어떤 의미로 사용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사실상 인정처럼 남을 수 있습니다
피의자의 의도는 아마도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미안하다”는 취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조서에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피의자는 술에 취해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피해자를 밀친 사실에 대해 죄송하다고 진술함.”
이 문장만 보면 피의자가 폭행 사실을 완전히 부인한 것인지, 기억은 없지만 인정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수사기관에서는 ‘행동 자체는 인정하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다른 증거와 진술 경위까지 함께 판단해야 하기에 곧바로 법적인 자백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 진술이나 CCTV 일부 장면과 결합하면 혐의를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사용될 여지는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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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없다는 말과 잘못을 인정하는 말은 구분해야 합니다
기억이 불완전하다면 억지로 사건의 빈칸을 채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질문에 단순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라고 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실제로 기억하는 범위와 확인하지 못한 부분을 나누어 설명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술자리에서 말다툼한 사실은 기억하지만 상대방을 밀친 장면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말다툼한 것은 기억하지만 신체 접촉 여부는 기억나지 않아 현재로서는 인정하거나 부인하기 어렵습니다”라고 진술할 수 있습니다. 영상에서 자신의 행동이 확인된 뒤라면 그 장면을 보고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에 유감을 표시하고 싶다면 사실 인정과 감정 표현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다쳤다는 점은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제가 상해를 가했다는 사실은 확인이 필요합니다”라는 식입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행동까지 먼저 인정하는 것과 상대방이 겪은 상황에 유감을 표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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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 확인이 진술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조사가 끝나면 피의자는 작성된 조서를 열람하거나 그 내용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때 단순한 맞춤법이나 날짜만 확인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확실히 기억한다고 말한 사실과 추측한 내용이 구분되어 있는지, 조건을 붙인 답변이 단정적인 인정으로 바뀌지 않았는지 읽어봐야 합니다.
형사소송법상 피의자는 조서가 자신의 진술과 다르거나 사실과 다른 경우 증감 또는 변경을 요구하고, 이의나 의견을 조서에 추가하도록 요청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사 시간이 길어 피곤하더라도 서명하기 전에는 문장 하나씩 확인해야 합니다.
“대충 같은 뜻이겠지”라며 넘어간 표현이 이후 사건의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랬다면 죄송합니다”라는 말, 모든 사건에서 반드시 불리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사과와 사실 인정, 기억과 추측이 뒤섞인 채 조서에 남는 경우입니다. 특히 폭행·성범죄·공무집행방해처럼 당사자 진술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건에서는 이 차이가 수사 방향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기억이 불완전하거나 어떤 범위까지 인정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면, 조사 전에 변호사와 상담하여 기억하는 사실과 확인이 필요한 부분부터 구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면 조사에 함께 참여해 질문의 의미를 파악하고, 조건부 답변이 단정적인 인정으로 기록되지 않도록 조서 내용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예의상 건넨 사과가 혐의 전체를 인정한 말로 남지 않도록, 첫 조사부터 자신의 입장을 정확한 문장으로 정리해 대응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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